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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이야기

골프 여제 박인비와 '짠한 추억' <135>

by 마우대 2024. 1. 25.

박인비가 2016년 6월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인근의 사할리 골프클럽에서 열린 LPGA 투어 KPMG 위민스 챔피언십 1라운드를 마치고 LPGA 명예의전당에 입성,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무모하고 아찔했으며 으쓱한 '사연' 간직

필자에게는 세계적인 스타로 우뚝 선 '골프 여제' 박인비(36)를 부산으로 모셔오면서 나눈 '짠한 인연'이 있습니다.  마우대가 박인비와 짠한 인연이 있다고? 박인비 프로는 당연히  모를 가능성이 높겠지만 필자에겐 무모했고, 아찔했으며, 스릴 넘쳤고, 어깨가 으쓱해진 잊지 못할 추억이었습니다. <134> 편에선 마우대와 박인비 프로 간의 짧고도 웃지 못할 그 짠한 사연을 소개해보겠습니다.

남기협 프로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이어나가고 있는 박인비 프로가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 올림픽 여자 골프 금메달리스트로서 2023년 8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 후보 신청을 한 것이죠. 그는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24년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열리는 IOC 선수위원 선거에 도전, 스포츠 행정가로서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중학교 시절 박세리 프로의 활약상을 보고 미국 골프 유학길에 오른 박인비. 그는 2006년 LPGA 무대에 진출한 뒤 US여자오픈 등 메이저 대회를 휩쓸어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는 통산 20승을 거둬 2016년 박세리에 이어 최연소로 LPGA 명예의전당에 입회하면서 '골프계의 전설'이 되었죠.  많은 팬들은 그가 꼭 IOC 선수위원에 당선되어 국제 스포츠 행정가로서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합니다. 

 

2013년 12월 17일 부산에서 지역 모 문화재단 주최로 열린 사회공헌상 시상식에서 박인비 프로가 국위선양부문 수상자 자격으로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사회공헌상 '국위선양부문 후보'로 강력 추천

그럼 지금부터 박인비와 그 짠한 인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필자가 모 언론사 부산취재본부장으로 근무할 때인 2013년의 일입니다. 필자는 당시 H건업 창업자 J회장 부인이 운영하는 H문화재단 일을 무보수 명예직으로 도와주고 있었습니다. H건업은 국내 건설 토목분야, 특히 항만건설 분야에서 경쟁력을 갖춘 견실한 기업이고 H문화재단은 지금도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이 재단은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의 하나가 사회공헌상 수상자를 선정, 상금 5천만 원을 지급하는 것이었습니다. 필자는 박인비 프로를 6개 부문(국위선양-교육문화예술-경제진흥-과학기술-사회봉사-특별상) 중에서 '국위선양 부문' 후보로 강력하게 추천했고, 치열한 경쟁을 펼친 끝에 결국 박인비가 수상자로 뽑혔습니다.

 

2013년은 박인비가 LPGA 투어에서 최절정의 성적을 내고 있을 때입니다. 그해 무려 6개 대회에서 우승했는데 그중에서 절반인 3개 대회가 메이저 대회였기 때문입니다. '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4월), 'US여자오픈'(6월), '웨그먼스 LPGA 챔피언십'(8월) 우승이 그것입니다. 11월 열리는 영국 브리티시 여자오픈만 제패하면 LPGA 사상 처음으로 같은 해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죠. 

 

사회공헌상 국위선양부문 수상자 박인비 프로가 수상자들과 단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세계적 스타 부산 시상대 세우는 큰 과제 안아

그런 박인비가 H 사회공헌상 수상자로 확정되자 뛸 듯이 기뻤지만 곧바로 필자에게 '큰 과제'가 떨어졌습니다. 부산과는 전혀 연고가 없는 '세계적인 스타'  박인비가 수상을 받아들이도록 하고, 또 12월 17일 부산의 시상대에 차질없이 세울 수 있어야 했습니다. 재단은 그 중책을 필자에게 떠맡긴 겁니다. 추천을 했으니 시상까지 책임지라는 '엄명'이랄까요. 

필자는 즉시 본사 스포츠레저부 후배에게 '긴급 SOS'를 날렸고, 박인비 매니지먼트 회사 전화번호를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해당 회사 여직원은 "왜 H문화재단이 박인비 선수에게 상금 5천만 원을 주려고 하죠?"라며 싸늘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전후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과정 내내 냉랭한 말투로 필자의 자존심을 뭉갠 그녀의 마지막 질문.

Q  :  "H건업의 J 회장님 골프 치시나요?"(그녀)

A  :  "아뇨, 골프 못 치십니다!"(필자)

 

그녀는 그제야 알았다며 박인비 프로 측과 상의한 뒤 연락을 주겠다고 했고, 결국 박인비 프로를 시상대에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 회사 여직원이 그렇게 필자에게 쌀쌀하게 군 이유를 나중에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무례한 기업인'이 상금 5천만 원 쥐어주고 박인비 프로의 유명세를 이용, 기업 홍보 전략으로 악용하지 않을까 걱정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박인비 프로가 사회공헌상 국위선양부문 수상을 한 뒤 재단 관계자와 팬들에 둘러싸여 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박인비와 악수... 그 '아담한 손'으로 세계를 지배하다니

시상식이 열린 2013년 12월 17일 오후. 부산진역 부근에 있는 재단 13층 대강당엔 부산의 유력 기관장을 포함해 수많은 인파로 북적였고 방송사를 비롯한 여러 언론의 취재 열기 또한 뜨거웠습니다. 박인비는 당시 약혼자였던 남기협 프로와 함께 약속 시간에 상기된 표정으로 시상식장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곤 시상식 단상에 올라가 야무진 수상소감을 밝혀 큰 박수를 받았고요.

단체 기념촬영을 하기 전 필자가 청한 악수를 박인비가 받아주었습니다. 손을 잡는 순간 우람한 체격에 비해 손이 작고 너무 부드럽다는 느낌에  깜짝 놀랄 정도였습니다. "이런 아담한 손으로 어떻게 세계를 지배해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박인비는 2015년 8월 리코 위민스 브리티시 오픈까지 끝내 우승,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함으로써 국위선양을 이어가는 등 재단의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박인비는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 올림픽에 한국 여자대표로 출전,  금메달까지 따냄으로써 세계 최초 '골든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면서 골프계의 찬란한 별이 되었습니다.

다음 기회에는 부진에 허덕이던 박인비와 그를 통산 20승으로 이끈 남편 남기협 프로의 방송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골프 포기까지 생각할 정도였던 '심각한 슬럼프'를 털어내고 20승을 쌓아간 이야기, 알콩달콩 살아가는 사연 등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인비 프로의 앞날에 승승장구를 기원합니다. 

 

마우대의 인생골프 이야기는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