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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이야기

박인비 "남편 만나 20승 거뒀죠" <136>-②

by 마우대 2024. 1. 27.

2012년 에비앙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박인비 선수가 태극기를 펼쳐들고 기뻐하고 있다. 2013년부터 이 대회가 LPGA 메이저대회로 승격했다. (사진 = IB스포츠)

 

우리는 그냥 박인비 프로가 무던하게 골프를 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슬럼프를 겪었을 것이라는 걸 몰랐다. 입스 아닌가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을 해서 많이 놀랐다.

= (朴) 골프가 그래요. 한번 좀 잘못된 길로 빠져들어서 깊게 가면 정말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게 골프이거든요. 어제 한 스윙을 오늘 똑같이 못하는 게 골프일 정도로 되게 예민한 운동이다. 거기다 또 정적인 운동이다 보니까 심리적인 것도 되게 많이 작용하는 운동이라서 심리적인 것과 테크닉적인 것이 같이 오면 진짜 무서워진다.

 

남 프로가 레슨을 하게 되면서 처음 두 달 동안은 무지하게 싸웠다고 그러던데
= (朴) 막상 레슨을 시작하니까 이거는 진짜 내가 생각했던 골프 방향이 아닌데 "이거를 막 하라!"는 거예요. 예를 들자면 우측으로 밀리는데 오빠가 어깨를 더 열어서 치라고 했다. 저는 그렇게 하면 깎여서 더 우측으로 갈 것 같으니까 못하겠더라. 계속하다가 열받아가지고 그냥 홧김에 "그럼 이렇게?"라고 소리 지르면서 정말 과장된 스윙을 했다. 그러면서 "잘 봐라, 진짜 과장되게 해 볼게" 하고 쳤는데, 진짜 공이 너무 잘 맞았어요. 그렇게 과장되게 했었어야 될 만큼 제 스윙이 많이 틀어져 있었던 거죠. 말도 안 되게 막 이렇게 쳤는데 공이 쫘악 나갔다. 완전 스트레이트로.

= (南) 잘 따라 들어오는 클럽에 공이 착 걸려 빨랫줄같이 쫘악 날아가는 것을 와이프가 보더니 "무슨 일이야?" 이렇게 된 겁니다. 사실 그때부터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아듣기 시작하게 됐다. 그게 완전 (터닝) 포인트였다.

 

스윙 폼을 바꾼다는 건 어마어마한 모험이 아니냐. 기존의 것들도 망가질 수 있기 때문에 (바꿀지 말지를) 선택을 해야 될 문제 아닌가
= (南) 시즌 중에 바꿔야 되니까 그래서 좀 힘들었다. 누워도 와이프 스윙만 생각하게 되더라. 누워서 이미지를 계속 그렸다. 이렇게 했을 때 어떤 동작이 나올 것인가, 저렇게 했을 때 그다음 동작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파악을 하고 얘기를 해줘야 했다. 선수니까. 하나 잘못하면 완전히 틀어질 수도 있으니까.

 

본인의 노력도 당연한 거겠지만 이거 '사랑의 힘' 아닙니까

= (朴)  오빠 만나기 전에 딱 US오픈 1승 하고 있었다. 남편이 레슨하고 난 뒤 LPGA 20승을 올렸다. 그러니까 시작은 1승, (남편을) 만나고 함께 20승을 했다. 주변에서는 내가 TV와 신문에도 나오고 그러니까 "아이고, (남기협) 와이프 잘 만났다" 이렇게 얘기를 많이 하시는데 사실은 제가 남편 잘 만난 거다. 제 주변사람들은 다 아는 사실이다. 

= (南)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  (2012년 에비앙 마스터스 우승 때의 이야기) 에비앙 마스터스 대회가 세리머니가 좋거든요. 우승하면 헬기에서 다이버가 한 명 뛰어내려요. 태극기를 들고 뛰어내려서 18홀 그린에 딱 떨어지거든요. 그때 진짜 눈물이 핑 돌았다.

= (朴) 그때 골프가 안 돼서 자꾸 불행하다고 느끼던 때였다. 엄마 아빠한테 골프 내 인생에 정말 크게 차지하는 것은 맞지만 나도 좀 행복함을 먼저 찾아주면 안 될까 이렇게 얘기했었다. 2012년 에비앙 대회에서 오빠랑 같이 한 우승은 정말 내가 행복하게 골프를 해서 거둔 첫 우승이었던 것 같다. 정말 내 행복을 찾아서 가는 길에 우승이라는 것이 있었다. 골프를 참 잘한 것 같다. 골프를 통해서 남편도 만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박수도 받고. 그때 정말 즐겁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했던 것 같아요.

 

오히려 붙어 있으면 싸우게 되는데

= (朴) 저는 오히려 운동이 더 잘되더라고요. 왜냐하면 다른 거 신경을 안 써도 되니까. 

= (南)  빨래 잘하고 밥 잘 챙겨주고 물도 챙겨주고 냉 타월도 걸어주고,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죠.

 

남편이자 코치님이니까 수업료는 어떻게?

= (朴) 연봉하고 인센티브 계약을 한다.

= (南) 두둑하다.

= (朴) 제가 오빠 코칭하는 거를 다른 선수에게는 하지 말아 달라고 얘기를 했다. 오로지 나만 해달라고. 왜냐하면 내가 현역일 때는 노하우를 셰어 할 수는 없으니까. 대신 단독코치니까 비용지불은 그만큼 해야지.

 

'골든 커리어 슬램'을 달성한 건 전 세계에서 박인비 선수가 유일하다 

= (朴)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 지 최근이니까 기회가 많이 없어서 제가 유일한 것일 수도 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확정지은 뒤 고개를 뒤로 젖히며 감격스러워 하고 있는 박인비 프로. (사진 = EPA/연합뉴스)

 

리우올림픽 때 감독이 박세리 감독 아니었나?

= (朴) 맞아요. 올림픽 골프장에 일주일 전에 도착해 남자 선수들 시상식을 우연히 구경하게 되었다. 거기서 저스틴 로즈(잉글랜드)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국기 게양과 함께 국가(國歌)가 울려 퍼지는데 그걸 보고 골프 인생에서 시상대에 너무 서 보고 싶은 거예요. 많은 우승을 해봤지만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서 내가 저 단상에 올라가는 그 마음은 얼마나 벅찰까 라는 생각이 너무 간절히 들었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정말 열심히 경기에 임했던 것 같다. 밤에 식사 후 옥상에 올라가서도 빈 스윙을 거의 100번씩 계속했던 것 같다. 완벽하게 하고 싶기도 했다. 그때는 다른 슬럼프를 겪고 있었다. 왼손 엄지 인대 부상이었었거든요.

올림픽에 나가면 안 된다라는 여론이 되게 많았고 부상도 같이 오고 이러다 보니까 엎친데 덮친 격으로. 그때 한 3개월 정도 (올림픽) 준비를 했다. 그 세 달 동안 골프 인생에 있어서 진짜 제일 열심히 한 것 같다. 좀 보여주고 싶었다. 나갈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하고 정말 잘할 수 있다는 거를 보여주고 싶었다.  사실 부상이 악화되어서 심각해지는 상황이 오면 이번 대회만 하고 골프 인생 끝나도 된다는 생각으로 임한 그런 대회였다.

= (南) 와이프가 우승을 해도 세리머니가 그렇게 크지 않다. 그냥 채를 드는 정도였으나 올림픽 때에는 딱 하나 추가했는데, 양팔을 들고 고개를 딱 뒤로 젖히더라. 바로 옆에서 이를 지켜보면서 "정말 힘들었겠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진짜 너무 고생하고 안 좋은 자신을 이겨낸 아내가 대견스러웠다.

 

박인비 선수에게 골프 인생을 치자면 지금 몇 번째 홀을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나

= (朴) 저는 거의 17번 홀 정도는 왔다고 생각한다, 현역선수로서는. 근데 새로운 라운드가 또 기다리고 있겠죠. 2라운드.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우승한 뒤 금메달 시상식을 받고 팬들에게 인사하는 박인비 프로. (사진 =연합뉴스)

 

 

남 코치에게 박인비 선수가 어떤 존재?

= (南)  한마디로 표현하면, 살면 살수록 좋은 사람이고 살면 살수록 정감 가는 사람이다. 다시 태어나더라도 박인비다.

= (朴) 그냥 둘이 행복하자고 시작한 일이 "오, 어쩌다 보니 정말 좋은 코치였네? 어쩌다 보니 나를 정말 잘 가르치고." 이게 그냥 의도하지 않고 계획하지 않은 일들이 그냥 다 이 한 사람으로 인해서 다 만들어진 것 같다.

한편으론 좀 미안하기도 하다. 선수로서 자기도 성공하고 싶은 그런 욕망이 많이 있었을 텐데, 고민도 하지 않고 "너 가르쳐주고 서포트해 줄게"라며 마음먹어준 그게 정말 너무 고맙다. 보통 한 라운드 5시간 정도 경기한다. 근데 거의 혼자 생각하고 혼자 스윙하면서 계속 걸어 다녀야 하는 운동이다 보니까 누구한테 기댈 데도 없다. 정말 못 칠 때는 온전히 나의 탓이고 누구 탓할 때도 없어서 잔인할 수도 있다. 근데 정말 본인의 꿈도 포기하고 나의 꿈을 함께 걸어가 줘서 고맙다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 完>

 

※ <영상출처> 유튜브 '유퀴즈온 더블럭' 슬럼프로 은퇴 직전 남편 코칭으로 우승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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