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천(蒼天)에 낙구(樂球)이어라!
골프의 속성을 한마디로 압축, 대변해 주는 글귀입니다.
푸른 하늘(蒼天)에 하얀 골프 볼(白球)을 붕붕 날리는데,
그 볼은 그냥 볼이 아닙니다.
모든 즐거움이 응축된 공,
하얀 골프 볼이 바로 낙구(樂球)인 것입니다.
예의주시해야 눈에 띄는 '창천낙구碑'
부산 근교 경남 양산 통도사 인근 경부고속도로변에 위치한 통도파인이스트 cc. 이 골프장은 1984년 8월에 남코스 18홀로 영업을 시작한 뒤 1985년 12월에 북코스 18홀이 더 보태지면서 36홀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아기자기하면서도 워낙 자연친화적으로 설계되어 있어 부산 경남 골퍼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2008년 골프장 주인이 바뀌면서 골프장 명칭도 '통도 cc'에서 '통도파인이스트 cc'로 변경되었습니다.
이 골프장에서는 라운드를 마치고 뜨끈뜨끈한 욕탕에 몸을 담근 채 지긋이 창밖을 바라보면 거대한 비석이 훅 눈앞에 다가옵니다. 바로 이 '창천낙구碑'입니다. 예사롭게 대하면 볼 수 없고 주의 깊게 봐야 이 비석이 눈에 들어옵니다.
90대, 80대 타수를 맴돌면서 한창 골프에 빠져 있을 때인 2000년 초반부터 저는 이 골프장을 자주 찾았습니다. 그 당시 어느 날 우연히 욕탕에서 이 비석을 발견하고선 골프하고 어쩜 그렇게 잘 맞는 글귀를 선택했을까 하고 탄복한 적이 있었습니다.
세월의 흔적 '돌이끼' 잔뜩 자라고 있더라
2023년 3월 25일. 저는 고교동기회의 회장이자 이 골프장 회원으로서 개인병원을 경영하는 H원장에게 특별히 부탁해 이날 라운드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동반자는 고교 동기인 L 교수와 교장 출신인 K였습니다. 오랜만에 찾은 터라 창천낙구비가 잘 있는지 궁금해서 가까이 가봤더니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푸른 돌이끼가 잔뜩 자라고 있었습니다. 20여 년이란 세월의 흔적을 비석 머리에 잔뜩 이고 있었던 것입니다.
창천낙구라....
골프의 속성을 단 네글자로 정리한
참으로 기막힌 표현입니다.
3월 말, 4월 초 통도파인이스트 cc를 찾는 골퍼들은 또 다른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상 어떤 골프장에서도 보기 힘든 벚꽃세상을 맘껏 감상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제가 H원장에게 특별히 부탁한 이유도 바로 이 벚꽃 천지에 흠뻑 빠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1월 21일 H원장 초청으로 겨울 라운드를 할 때 통도파인이스트 cc의 벚꽃 잔치를 보고 싶다고 부탁했더니, H 원장은 고맙게도 잊지 않고 불러주었습니다.
환상의 '벚꽃 잔치' 즐기는 호사 누리게
통도파인이스트 cc는 벚꽃을 감상하기에는 명소 중에 명소입니다. 고속도로를 벗어나 골프장으로 향하는 진입로에 들어서면 3~5㎞에 달하는 클럽하우스까지 양쪽에 쫙 도열해 있는 수천 그루의 벚나무들이 박수를 쳐 주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골프장 개장 당시 심어졌으면 수령은 40년이나 됩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10m 이상 자라 거목이 된 벚나무의 가지들이 하늘을 가려줘서 '터널'이 되어 버렸습니다.
봄에는 은하수 별보다 더 많은 벚꽃이 만들어주는 '벚꽃 터널'로, 여름에는 무성한 벚나무 이파리가 만들어주는 '그늘 터널'로, 가을에는 노랑 빨강색의 '벚나무 단풍 터널'로 바뀌어서 계절별로 변화무쌍함을 자랑합니다.
진입로의 벚나무 거목이 흩뿌려주는 하얀 벚꽃에 취해서 올라가면 남코스 벚꽃천지가 또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히 남아웃코스 2번 홀 벚꽃은 골퍼들을 황홀의 극치로 몰고 갑니다. 사람들은 벚꽃 구경을 하기 위해 가족들과 명소를 찾아 나섭니다. 그러나 골퍼들 사이에서는 통도파인이스트 cc 남코스를 라운드 하는 것만으로도 벚꽃 구경 실컷 했다고 자랑할 정도입니다.
남코스는 숨어있는 벚꽃 감상 명소인 셈입니다. 도랑치고 가재 잡듯이, 라운드 하고 벚꽃 구경도 하는 호사를 동시에 누리는 것입니다. 저는 이날 벚꽃 황홀경에 취한 채 열심히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누르느라 정신이 팔려 '막창 OB'도 한 방 내고, 티샷을 벙커에 빠트려 더블보기를 잡아야 했습니다.
영축산의 '독수리 웅비 기세' 내 것으로
통도파인이스트 cc를 찾으면 또 한 가지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골프장 서쪽 맞은편에 있는 1,400년 고찰 통도사를 안고 있는 영축산의 '독수리 기세'를 한껏 가슴에 안을 수 있는 즐거움이 그것입니다. 646년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한 통도사는 한국의 삼보사찰 중 하나이자 팔대총림 중 하나로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안치된 적멸보궁(寂滅寶宮)이 있어 불보(佛寶) 사찰로도 불립니다.
영남알프스 9봉 중에 하나인 영축산은 해발 1,081m에 이를 정도로 웅장한 산세를 보여줍니다. 특히 통도파인이스트 cc에서 바라보는 영축산은 거대한 독수리가 양 날개를 쫘악 펴고 천상으로 박차 오르는 듯한 기세등등한 형상을 하고 있어 이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기(氣)를 받는 착각에 빠질 정도입니다. 남인코스 9번 홀 티잉 그라운드에서 바라보는 영축산의 기세는 압권입니다. 저는 항상 이 9번 홀 티샷을 하기 전에 심호흡을 합니다. '영축산 독수리'를 가슴에 마음껏 받아들이기 위해서.
이날의 라운드를 통해 저는 골프가 지극히 인연법과 닿아있는 운동이라는 점을 또 한 번 절감했습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누구와 만나 즐기는 운동이 아니라 삶의 궤적과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 골프인 것이지요. 50년 전 까까머리로 만난 H원장, L교수, K 전 교장과의 이날 라운드는 고교동기(高校同期)끼리 맘껏 회포를 풀 수 있는 고귀한 자리였습니다. 저는 H 원장에게 가을 단풍이 절경을 이룰 때쯤 다시 이곳에서 만나게 해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래서 통도파인이스트 cc에서의 가을 라운드가 벌써 기다려집니다.
오늘은 봄을 맞아 창천낙구비(碑)가 버티고 있고 벚꽃 천지가 된 통도파인이스트 cc에서 고교 동기끼리의 라운드를 소재로 다뤄봤습니다.
마우대의 인생 골프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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