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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이야기

"400경기 출전"...안송이의 꿈 꼭! <188>

by 마우대 2024.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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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31일 360회째 출전함으로써 KLPGA 투어 역대 최다 출전 기록을 세운 안송이 프로. (KLPGA)

 

미국엔 낸시 로페즈(Nancy Lopez·미국·67)가 있다면 한국엔 안송이가 있다? 필자와 동갑인 1957년생 낸시 로페즈는 말 그대로 LPGA 투어의 대형선수이자 전설입니다. 8살에 골프에 입문해 '될성부른 떡잎'이었던 낸시는 12살에 아마추어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등 재능을 보였고, 15살 때 US 주니어대회 챔피언, 웨스턴 주니어 등 여러 상을 휩쓸었습니다. 17살에 털사(TULSA) 대학에 입학했고 20세이던 1977년 프로로 데뷔한 뒤 곧바로 출전한 US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런 낸시에겐 한(恨)이 있습니다. 데뷔하던 해 준우승을 차지한 US 오픈을 끝내 우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낸시는 40세의 나이로 1997년 당시 신인이었던 한국의 박세리와 US오픈에 또 출전했으나 영국의 앨리슨 니컬라스에게 또 한 타가 모자라는바람에 준우승에 머무르고 말았습니다. 이때 낸시는 4일 내내 60대 타수를 치는 최초의 선수로 이름을 올렸지만 끝내 US오픈 우승컵을 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낸시는 미국 골프계, 세계 골프계의 '확실한 전설'로 자리매김했습니다.

 

5개 연속대회 우승을 했는가 하면 올해의 신인선수상, 올해의 선수상, 상금왕에 선정되었으며 평균 최저타수상인 베어 트로피를 세 차례나 수상하는 등 발군의 실력을 보인 끝에 1987년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헌액 되었습니다. 그녀는 전 메이저리그 선수와 결혼한 뒤 세 딸을  키우면서도 현역을 유지, 여자 프로가 기혼자가 되어서도 선수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데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낸시는 3차례 메이저 챔피언십을 포함해 통산 48승을 거둔 뒤 25년간의 투어 생활을 마감하고 2002년 은퇴했습니다.

 

2020년 낸시는 골프계 최고의 영예 중 하나인 밥 존스 어워드의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이 상은 최고 수준의 스포츠맨십, 인성, 골프에 대한 존중을 보여준 개인에게 수여되는 영광스러운 상입니다. 그런데 골프 역사가 짧은 KLPGA 투어에서도 미국의 낸시 로페즈를 꿈꾸는 '예비 전설'이 나타났습니다. 바로 안송이(34·KB)  프로가 그 주인공입니다. 2010년부터 KLPGA 투어를 누비고 있는 안송이가 2024년 10월 31일 제주도 엘리시안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S-Oil 챔피언십에 출전함으로써 정규투어 360번째 출전,  '최다 대회 출전 및 라운드 기록'을 경신한 것입니다.

 

루키 박세리를 각별히 아꼈던 LPGA의 전설 낸시 로페즈. 낸시 로페즈가 1998년 7월 LPGA JAL 빅애플클래식 1라운드에서 티오프를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1990년 7월생인 안송이는 2010년 정규투어에 입성한 뒤 15 시즌을 꾸준히 소화한 끝에 홍란(38)의  최다 출전 및 라운드 기록을 갈아치웠습니다. 홍란은 2022년 9월 29일부터 10월 2일까지 치러진 인천 청라의 베어즈베스트 청라 골프클럽에서 열린 하나금융그룹 챔피언십 출전을 끝으로 17년간의 투어 생활을 마무리함으로써 최다 대회 출전(359회)과 최다라운드 출전(1,049라운드)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끈기와 집념의 대명사인 안송이에게 이 부문 바통을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나 안송이는 홍란이 세운 '최다 컷 통과'(287회)의 기록을 깨려면 앞으로 21번 이상 컷 통과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올 시즌을 끝낸 안송이의 2024년도 11월 10일 현재 상금순위는 41위(2억4,641만 8,175 원)로, 올해 상금 순위 60위 안에 들었기 때문에 내년 시즌에도 뛸 수 있습니다. 따라서 KLPGA 최다 대회 출전 및 최다 라운드 출전 기록은 당분간 '안송이 자신'에 의해 계속 깨지게 되었습니다. 15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최고의 실력자만 살아남을 수 있는 정규투어에 꾸준히 얼굴을 보여준다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2010년 정규투어에 입성한 안송이가 어떤 과정을 거쳐 15년을 버텨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군요. 168㎝의 키에 가녀린 체형을 가진 안송이는 2008년 KLPGA에 데뷔한 뒤 2009년부터 2부 투어에서 활동하다 정규투어에 입성했습니다. 첫해는 17경기에 출전했지만 9번이나 탈락하는 바람에  상금순위 74위로 결국 시드 전을 치를 수밖에 없었고, 시드 전 17위로 겨우 2011년 정규투어에 잔류하는 위기를 겪기도 했습니다. 많은 선수들은 시드 전에서 주저앉은뒤 사라지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안송이는 2011년 시즌에도 16번 경기에 출전, 10번을 컷 통과했으나 톱 10이 없어 상금순위 68위로 또 시드 전을 뛰어야 했습니다. 다행히 시드 전 1위로 2012년 시드 획득에 성공, 장기 레이스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습니다. 그렇게 2년 연속 시드 전을 치르며 겨우 살아남았던 안송이. 2012년 시즌부터는 상금 순위가 부쩍 올라가는 등 안정적인 기량을 보여주기 시작하더니 2019년 시즌 막바지에 첫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감격을 맛봤습니다.

 

2022년 9월 은퇴식을 하고 필드를 떠난 홍란 프로가 어머니와 꽃다발을 받고 활짝 웃고 있다. (KLPGA)

 

이 시즌 11월에 열린 ADT 캡스 챔피언십 최종라운드에서 챔피언조에서 출발한 안송이는 7언더파를 몰아치며 바짝 추격한 이가영에게 쫓겼으나 합계  9언더파를 기록, 8언더파를 기록한 이가영을 누르고 끝내 우승컵을 거머 쥐었습니다. 이로써 안송이는 237번째 대회만에 감격의 첫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는 KPGA 통산 '첫 우승까지 참가대회가 가장 많은 선수'로도 안송이가 차지한 것입니다. 첫 우승까지 참가대회가 많은 선수 2위는 166 경기만인 2019 교촌 하니 레이더스 오픈에서 우승한 박소연(2011년 8월 입회)입니다.

 

따라서 '첫 우승까지 참가대회가 가장 많은 선수' 부문에서도 안송이의 기록은 좀처럼 깨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하튼 안송이는 이 대회 우승으로 정규투어 10년 출전상인 'K-10 클럽'에 들어갔고, 첫 우승을 기록한 선수만 가입할 수 있는 '위너스 클럽'에도 가입할 수 있었습니다.  안송이는 첫 우승 이후 2020년 시즌  9월에 열린 팬텀 클래식에서 10개월 만에 2승째를 기록한 뒤 아직 우승컵을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다 출전 기록으로 KPGA의 새로운 역사를 쓴 안송이에겐 새로운 자극이자 도전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입니다.

 

안송이가 언론과 인터뷰에서 밝힌 내용은 듣는 이로 하여금 코끝을 찡하게 만듭니다. "입회 첫해에는 역다 최다 기록 보유자가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당시 목표는 어떻게든 1년씩 버텨보자는 거였다. 그리곤 매년 상금 60위 안에 들자라는 생각으로 투어생활에 임했는데, 360번째 출전이라는 금자탑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수많은 시련을 이겨내고 KLPGA 투어 최다 출전 기록을 세운 나 자신에게 정말 애썼다고 토닥여주고 싶다." 15년을 집념과 끈기로 버텨 낸 안송이, 정말 애썼고 장하지 않습니까?

 

안송이의 절절함은 이어집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데다 KLPGA 투어 데뷔 초기 때는 여건이 힘들어서 최대한 경비를 아껴가며 대회에 임해 왔다. 한 번도 부정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무조건 된다'라는 마음을 먹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겠으나 정출전권을 잃거나 실패할 것이라는 걱정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무조건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이유는 프로골퍼로서 성공해야 한다는 간절함이 커서 그랬던 것 같다. 골프와 KLPGA 투어는 내게 새로운 삶과 희망을 선사해 준 고마운 존재라고 말하고싶다."

 

그런 안송이에게도 심각한 위기는 있었습니다. 갑자기 골프가 하기 싫어진 것이죠. "30세가 되던 투어 데뷔 10년 차에서 반복되는 삶을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골프가 하기 싫어져 은퇴를 잠시 고려했었다. 아침에 대회장에 가는 게 귀찮을 정도로 골프에 대한 애정이 식었었다." 그런 안송이에게 찾아든 우승은 골프채를 다시 붙들게 한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2019년 11월에 열린 ADT 캡스 챔피언십의)  선물 같은 우승이 찾아왔다. 그 이후 다시 골프가 재미있어지면서 투어 생활을 이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안송이는 메인스폰서인 KB금융그룹에 깊은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2011년부터 KB금융그룹의 모자를 쓰고 있는데 의지할 곳이 하나도 없는 내게 손을 먼저 내밀어준 내 인생의 은인이다. 그때 받았던 계약금으로 투어 생활을 하는데 숨통이 트이게 되었다. 우승을 하지 못하는 등 성적이 좋지 못해도 언제나 나를 믿고 응원해 주는 KB금융그룹은 내게 큰 나무와도 같다. 아무리 잘해도 은혜를 갚지 못하겠지만 은퇴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보려고 한다." 이처럼 투어를 뛰는 프로들에겐 기업 후원, 즉 스폰서가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의 낸시 로페즈'의 길로 들어선 안송이의 도전은 계속됩니다. 안송이는 "이왕 이렇게 된 거 400경기 출전에 도전하려고 한다, 여기에 또 하나 이루고 싶은 건 홍란 선배의 최다 컷 통과 기록을 경신하는 것이다. 두 가지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몸 관리를 잘해 보도록 하겠다."라며 새로운 목표를 제시했습니다. 정규투어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조건 상금 순위 60위 안에 들어야 하고 그렇지 못했을 경우 시드 전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기량과 체력이 필요합니다. 안송이의 의미 있는 멋진 도전, 다 함께 성원의 박수를 보내며 지켜보시죠.

 

마우대의 인생골프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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