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안목에서 보면 시도하는 시간이 충분히 길다면 행운은 평등하다."
"은행원이 은행 돈을 훔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칭찬받을 수 있나?"
-바비 존스-
벌타 자청... 골프계의 전설로 우뚝
아마추어로 남은 골프의 전설, 바비 존스(Bobby Jones, 본명 Robert Tyre Jones Jr. 1902.3~1971.12)의 명언입니다. 오늘은 골프의 룰을 철저히 지킨 전설의 골퍼 바비 존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골프는 수십만 평에 달하는 넓은 코스에서 경기를 펼쳐야 합니다. 경기위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여러 선수가 동시에 시합을 펼치기 때문에 모든 규정 위반을 일일이 다 체크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룰을 위반했을 경우 경기위원에게 신고하는 등 철저히 룰을 준수해야 하는 '신사적인 스포츠'가 골프입니다.
1744년 스코틀랜드에서 만들어진 골프 룰의 역사는 올해로 279년이나 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하지 않고 지켜지는 룰은 13조, '있는 그대로 쳐라(Play the ball as it lies)'입니다. 실수이든, 의도적으로 움직였든 이 룰을 위반하면 페널티를 받아야 합니다. 페널티 구역이 아닌데도 다음 샷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지면 경기위원에게 당당하게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하고 1 벌타를 받으면 구제가 가능합니다. 그러나 코스에 서면 기본 중의 기본인 이 룰 준수가 쉽지 않습니다.
만약 선수가 이를 어겼다가 추후에 그 사실이 밝혀지면 실격패는 물론이고 일정기간 출전을 할 수 없는 등 중징계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아마추어 골퍼는 물론 프로선수들도 벌타를 자청하는 용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 소속 윤이나 프로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룰 위반 뒤늦게 신고한 윤이나 출장정지 3년
윤 프로는 2022년 6월 열린 DB그룹 한국여자오픈 1라운드 15번 홀에서 티샷이 오른쪽으로 빗나가 공을 찾던 중 러프에서 찾은 '다른 공'으로 경기를 마쳤습니다. '오구 플레이'를 한 것입니다. 윤 프로는 당일 스스로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가 뒤늦게 신고하는바람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윤 프로는 대한골프협회가 주최·주관하는 대회와 KLPGA가 주최·주관하는 대회에 3년간 출전할 수 없는 중징계를 받았습니다. 한창 기량을 발휘, 승승장구할 시기에 무려 3년동안 출전하지 못한다면 선수 입장에서는 치명타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윤이나 입장에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것입니다.
KGA는 '윤이나 오구 플레이 징계' 완화했지만...
그런 윤이나에게 '희망의 메세지'가 전해지는 듯했습니다. 대한골프협회(KGA)는 2023년 9월 26일 공정위원회를 열어 윤이나에게 내려졌던 출전 금지 3년의 징계를 1년 6개월로 감경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KGA 공정위는 윤이나가 협회의 징계 걸정에 순응하고, 징계 이후 50여 시간의 사회 봉사 활동과 미국 마이너리그 골프투어 13개 대회에서 받은 상금 전액을 기부하는 등 진지한 반성이 있었고, 구제를 호소하는 5천여 건의 탄원서와 국내 여론 등을 고려했다며 감경 이유를 밝혔습니다. 이로써 윤이나의 징계 기간이 2024년 2월 18일 종료될 것으로 알려졌지만 완전한 징계해제까지는 또 다른 '관문'이 버티고 있었던거죠.
KGA의 징계 감경 결정에 대해 골프계와 선수들 사이에서 반발 분위기가 만만치 않은 가운데 12월 14일 열린 'KLPGA 2023년도 제10차 이사회'에서 윤이나의 정회원 징계 감면 요청 건에 대한 토론을 거친 결과 2024년 연초에 개최될 차기 이사회에서 재논의하기로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이로써 윤이나의 내년 시즌 KLPGA 투어 참가 여부 최종 확정 시기는 또 늦춰졌습니다.
윤이나는 호쾌한 장타 등 뛰어난 기량으로 데뷔하자마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등 기대주였으나 장기간 출장 정지 처분을 당하는 바람에 많은 팬들을 허탈하게 만들었습니다. 윤이나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팬들은 그 징계가 언제 완전히 풀릴지 매우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윤이나는 순간적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오구 플레이'를 했다가 뒤늦게 자진 신고했지만 선수 생명이 끝날뻔한 위기를 맞았었죠. 이처럼 골프 룰은 골퍼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헌법'과도 같은 것입니다. 주말 골퍼들도 '윤이나 중징계'를 떠올리면서 라운드 중 불쑥 다가서는 순간적인 유혹을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골프 룰은 모든 골퍼에게 '공평하게', '가차 없이' 적용됩니다. 골퍼라면 윤이나의 룰 위반 사례와 바비 존스의 룰 준수 사례를 가슴에 담아놓고 '플레이의 잣대'로 삼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바비 존스는 어떻게 골프 룰을 지켜냄으로써 위대한 골퍼 반열에 오를 수 있었을까요. 바비 존스가 각종 대회에서 휩쓸고 있을 당시인 98년 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1925년 미국 매사추세츠 위스티에서 열린 US오픈 11번 홀에서 존스의 아이언샷이 잘못되어 그린 왼쪽 풀숲에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다음 샷을 하기 위해 어드레스를 하는 순간 존스가 보기에는 볼이 살짝 움직인 것 같았습니다.
심판도 못봤고, 갤러리도 못 봤지만 그는 "공이 움직였다."라고 경기위원에게 신고했고 2벌타를 받았습니다. 양심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벌타를 자청한 셈입니다. 결국 그는 이 벌타 때문에 마지막 라운드에서 맥파렌과 동타를 이뤄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으나 준우승을 하고 말았습니다. 만약 자진 신고를 하지 않았으면 존스는 연장전까지 가지 않고 우승 트로피를 들 수 있었겠죠.
"은행원이 돈 훔치지 않았다고 칭찬하나?"
나중에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의 '신사적인 행동'을 칭송하자 그는 이렇게 답변했습니다. "은행원이 은행 돈을 훔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칭찬을 받을 수 있나?" 큰 우승상금이 걸려있는데도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스스로 벌타를 자청한 존스의 처신은 골퍼라면 본받아야 할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진정한 용기를 보여준 그의 이 행동은 멋진 전설이 되었습니다.
바비 존스는 기량이 뛰어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1930년 한 해에 US오픈, US 아마추어, 디 오픈, 브리티시 아마추어를 모두 우승해 골프 사상 최초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습니다. 1923년 첫 우승을 거둔 뒤 1930년 은퇴할 때까지 8년 동안 당시 메이저대회인 디 오픈 3번, 브리티시아마추어선수권 1번, US오픈 4번, US아마추어선수권 5번 등 메이저 대회에서만 13승을 거뒀습니다. 투어선수들이 한 번도 하기 어렵다는 메이저 우승을 13번이나 차지한 것을 볼 때 그의 기량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바비 존스는 "시합에서 더 이상 게임을 즐길 수 없게 되었다."라며 돌연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는 이후 변호사로도 활동했으며 골프 교습용 비디오를 제작하고, 골프 교습서 '내가 골프를 하는 법(How I Play Golf)'를 펴냈으며 '바비 존스' 브랜드를 출시하는 등 왕성한 사업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고향 조지아주에 '걸작' 오거스타 GC 세워
골프 룰 준수의 전설인 바브 존스의 이름은 또 다른 측면에서 영원히 기억될 것 같습니다. 골퍼라면 죽기 전 꼭 한번 밟아보고 싶은 걸작 중의 걸작인 골프 코스를 세웠기 때문입니다. 친구들과 함께 바로 자신의 고향인 미국 조지아주에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을 조성한 것입니다. 이 골프장은 아름답기로도 유명하지만 오늘날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마스터스 대회 개최지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존스는 1934년 친분이 있던 골프 72명을 초대해 '오거스타 내셔널 인비테이션 토너먼트'를 처음 열었는데, 자신도 이 대회에 출전, 13위를 기록한 바 있습니다. PGA 4대 메이저대회 중에 하나인 마스터스 토너먼트는 올해는 4월 6일부터 10일까지 오거스타 내셔날 GC에서 상금 1,500만 달러를 걸고 세계적인 선수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띤 경쟁을 펼친 결과 2021년 US오픈 우승자인 스페인의 존 람(29)이 합계 12언더파로 우승, 우상상금 324만 달러를 차지했습니다.
골프계의 전설, 바비 존스의 골프 룰 준수 정신은 세월이 지날수록 밤하늘에 반짝이는 큰 별처럼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마우대의 인생골프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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