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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이야기

박세리 '눈물' vs 가족의 '절제' <169>

by 마우대 2024. 7. 1.
박세리 이사장이 2024년 6월 18일 서울 강남구 스페이스쉐어 삼성코엑스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부친 박준철씨의 사문서위조와 관련한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민국의 골프를 논하려면 고(故) 연덕춘(延德春·1916~2004) 프로와 박세리(46) 프로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연덕춘 프로는 대한민국 프로골퍼 1호입니다. 그는 25세 때인 1941년 일본오픈에서 당당하게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42세 때인 1958년 6월 국내 첫 프로대회인 제1회 한국프로골프선수권에 출전, 2위와는 무려 16타 차로 첫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만큼 연 프로의 실력은 출중했습니다. 그는 1968년 한국프로골프협회(KPGA)를 창설, 1972년 KPGA 회장을 맡아 한국 골프 발전에 혼신의 힘을 쏟기도 했습니다.

 

KPGA는 1988년 12월 열린 정기총회를 통해 여자 프로부를 별도의 사단법인인 한국여자프로골프협회(KLPGA)로 분리시켰는데, 초대 KLPGA 회장은 연덕춘 프로의 제자인 한장상 프로가 맡았습니다. 이처럼  수많은 제자를 길러내고 KPGA와 KLPGA를 탄생시킨 주역인 연덕춘 프로를 대한민국 골프의 '시조(始祖)'라고 일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연덕춘 프로가 대한민국 골프의 토대를 마련했다면 박세리 프로는 미국을 포함한 세계 무대에서 한국 골프의 존재감을 알린 '개척자'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박세리 프로는 온 국민이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에서 허덕일 때인 1998년 US여자오픈 연장전에서 연못에 맨발로 뛰어들어 샷을 하는 투혼을 발휘한 끝에 우승, 국민적 찬사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스웨덴 아니카 소렌스탐, 호주 캐리 웹과 함께 세계 무대를 나눠 가지는 기량을 과시했습니다. 또 LPGA 통산 25승이라는 대위업을 달성한 끝에 2007년 6월 한국 여자 골퍼로서는 처음으로 LPGA '명예의 전당'에 입회했고, 한 달 뒤인 7월에는 KLPGA 명예의 전당에도 입회하는 영예를 누렸습니다.

 

박세리의 가치는 그를 추종하는 수많은 후배들, '박세리 키즈'들이 쏟아져 나오게 했다는 점에서 더 빛을 발합니다. 박세리의 1998년 US여자오픈 우승 이후 대한민국에는 전 연령대에 걸쳐 엄청난 골프 붐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세리 키즈'는 박세리가 데뷔했을 때 10살 정도의 나이였던 1988년 언저리에 태어난 어린 여자 골프 선수들을 지칭합니다. 박인비, 신지애, 최나연, 김송희, 김인경, 이선화, 오지영, 김하늘, 이보미, 안선주, 양희영 등을 '세리 키즈'로 꼽을 수 있습니다.

박세리가 1998년 7월 미국 위스콘신주 블랙울프런 골프장에서 열린 US여자오픈 연장전 18번홀에서 드라이버 샷이 연못 언덕쪽으로 굴러들어가자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서 세컨드 샷을 하는 명장면.

 

그런 국보급 박세리에게 '가족'으로 인한 안타까운 일이 공개되어 대한민국 국민들을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을 골프에 입문시키고 세계적인 스타로 꿈을 펼치게 한 부친 박준철 씨를 사문서 위조 혐의로 경찰에 고소한 것입니다. 박세리희망재단 이사장은 2024년 6월 18일 서울 강남구 스페이스쉐어 삼성코엑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자청, 부친 박 씨가 새만금 해양레저관광 복합단지 사업에 참여하려는 과정에서 재단 이사장 도장을 위조한 사실을 밝혔습니다.

 

박세리는 "재단은 박준철 씨와는 무관하며 어떠한 직책이나 업무를 수행한 적이 없고 앞으로도 함께 진행할 계획이 없다."라며 "새만금개발청으로부터 위조된 사문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사회를 소집하고 대전유성경찰서에 고소했다. (위조된 인장과 실제 재단법인 인감은) 육안으로 봐도 확연한 차이가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부친 박 씨는 국제골프학교를 설립하려는 업체로부터 참여 제안을 받고 재단법인 도장을 몰래 제작해 사용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박세리의 이날 인터뷰를 통해 부친 박 씨가 유명 프로골프 선수 출신인 딸의 명성을 악용, 금전적인 손해를 끼치는 등 '몹쓸 짓'을 자행한 사실이 드러났 습니다. 박세리는 "2016년 은퇴한 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부친의) 문제점을 많이 알게 되었다. 채무를 한 본 해결하면 또 다른 게 수면 위로 올라오고, 마치 줄을 선 것처럼 채무 문제가 이어졌다. 문제가 점점 커졌고 현재 상황에 오게 됐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 부친이 끝없이 야기하는 '돈 문제'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 셈입니다.

 

박세리는 그냥 은퇴한 개인 프로골퍼 가 아닙니다. 올림픽 여자골프 감독을 맡고 골프 꿈나무를 육성하는 등  박세리는 대한민국 골프 발전을 이끌어갈 수 있는 '국보급 자산'입니다. 그런 박세리의 가치가 부친의 그릇된 행보로 인해 추락하는 것은 국가적 손실입니다. 일각에서는 박세리가 LPGA에 진출한 뒤 대회 상금과 기업 광고 등으로 수백억 원을 벌었지만  부친의 계속된 '재정적 사고'가 딸이 혼기를 놓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는 지적도 많습니다.

 

박찬호, 박지성, 손흥민 등 해외에 진출, 엄청난 몸값을 받은 스타플레이어들의 경우 부모나 가족들이 철저하게 돈을 관리해서 은퇴 이후에도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게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박세리도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함에도 부친의 '그릇된 처신'이 이를 막은 것 같습니다. 물론 자식을 유명 골프 선수로 키우기까지는 막대한 투자비가 들었을 겁니다. 그렇다고 자식이 번 돈을 언제까지나 맘대로 쓸 수 있는 부모여야 한다? 그건 아니잖아요. 부친 문제로 국민 앞에 눈물까지 보여야 했던 박세리 이사장의 처지가 참으로 딱하고 안타깝습니다.

 

마우대의 인생골프 이야기는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