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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참 희한한 운동입니다. 멀리 보내려면 힘을 빼야 하고, 똑바로 보내고 싶으면 힘을 더 빼야 합니다. 샷 순간 어깨 힘이 잔뜩 들어간 날은 틀림없이 좌탄 우탄, 냉탕 온탕 헤매는 게 골프입니다. 어쩌다 한번 잘 맞았다고 또 힘을 주었다가는 "억!", "아이코!", "에이 X!", "이게 뭐야?", "이럴 수가", "미치겠네!"를 외치거나 중얼거리기 일쑤입니다. 그러다 마지막엔 "오늘 왜 이래!"라는 비명과 함께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기도 하고요. 급할수록 마음을 더 비워야 하는 스포츠! 서두르면 스코어를 망치고 성급했기때문에 지고 마는 운동. 느긋해야 '승리'를 손에 쥘 수 있는 운동이 골프입니다.
일요일인 2024년 6월 23일, 부산의 한 골프장 S코스 9번 홀. 필자는 골프 구력 30여 년 만에 초유의 '처참한 경험'을 하며 좌절을 맛봤습니다. 골프 동호회에서 만난 지인 부부와 라운드를 즐겼는데, 이날 모든 샷의 결과는 '나쁨의 연속'이었습니다. 누군가 '엉망인 샷'을 해대면 동반 플레이어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치기 마련인 법인데 제가 그 '악역'의 주인공이었죠. 앞선 8번 파3 홀(162m)에서 7번 아이언을 잡고 톱볼성 샷으로 먼 거리 '온 더 그린'을 시킨 후 투 퍼트로 겨우 파세이브에는 성공했지만 결국 9번 롱홀에서 'OB 3방'을 날리는 사고를 치고 말았습니다. 골프를 치시는 분들은 압니다. '한 홀 OB 3방'의 처참함이 어떤가를.
S코스 9번 홀에서 빚어낸 그날의 '참상'을 솔직하게 고백해 보겠습니다. 8번 홀에서 근근이 파세이브를 했지만 버디로 응수해 온 동반자에게 '아너(Honor)의 지위'를 상실한 필자는 티샷을 하기 위해 티잉그라운드에 섰습니다. 이 홀은 롱홀이지만 티박스가 약간 높아 홀을 내려다볼 수 있는 데다 페어웨이도 넓기 때문에 평상시 같으면 호쾌한 샷을 날리는 '손맛'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장타자들은 투온을 노려서 이글이나 버디를 노리기도 하고요. 어드레스를 취한 뒤 심호흡 한 번 하고 드라이버를 크게 휘둘렀습니다. 투온이나 두 번째 샷을 그린 주위에 붙여 버디를 잡겠다는 욕심을 머리에 담고서.
"억!". 티샷을 하자마자 저의 입에서 터져 나온 비명이었습니다. 쭉 뻗어나가는 듯하던 볼이 푸시성 슬라이스로 연결되어 오른쪽 소나무 숲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프로비저너 볼(잠정구)을 치기 위해 다시 드라이버를 잡아야 했습니다. 깡~~! "아니 뭐야?" 저의 입에서는 다시 깊은 탄식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잠정구마저 오른쪽 숲 속으로 사라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골프 룰대로라면 두 번째 잠정구를 날려야 했지만, 경기진행을 위해 부득이 페어웨이 중간에 설치된 '특설 OB 존'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낙구지점 주변을 열심히 찾아봤지만 예상대로 티샷 한 볼 두 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티샷 2방이 OB가 났다는 사실을 확인한 저는 잠시 멍해졌습니다. 6번째 샷을 하기 위해 OB 특설 존에 선 저의 어깨는 더 뻣뻣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홀컵까지 210m를 남겨두고 5번 우드를 잡았죠. 6번째 온 더 그린을 시키거나 최대한 그린 주변에 갖다 놓자는 심산이 작용하면서 잔뜩 어깨 힘이 들어가고 있었나 봅니다. 있는 힘을 다해 5번 우드를 휘두르자마자 "아니, 이게건 뭐지?"라는 절규가 저의 입에서 흘러나왔습니다. 붕 뜬 볼이 드로우성으로 감기더니 왼쪽 소나무 숲 속으로 사라져 버린 겁니다. 3번째 OB는 그렇게 만들어졌습니다.
"애고애고!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이..."를 속으로 자꾸 되뇌었습니다. 맥이 탁 풀렸고 체념한 상태에서 8번째 친 볼은 홀컵에서 72m를 남겨둔 지점에 떨어졌습니다. 52도 웨지로 친 볼은 그린 에지까지 굴러갔고, 10번째 어프로치도 실패해 두 퍼트를 한 끝에 이 홀 경기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무려 한 홀에서 7 오버파(+7)인 12타나 친 것입니다. 30년 가까이 골프를 쳤지만 한 홀에서 7타를 더 친 적은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충격의 정도가 더 컸던 것 같습니다. 한 홀에서 7 오버파를 기록한 것을 '셉튜플보기(Septuple Bogey)'라고도 합니다.
프로들이 펼치는 경기에서도 한 홀에서 많은 타수가 심심찮게 나옵니다. 2019년 2월 미국프로골프(PGA) 2 부격인 웹닷컴 투어 리컴 선코스트 클래식 1라운드에서 초청 선수로 출전한 벤 다아먼드(미국) 선수가 491야드의 2번 홀(파 4)에서 무려 17타 만에 홀아웃, 한 홀에서 13타를 더 쳐 공식기록 '트레큐플보기(Tredecuple Bogey)'를 기록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습니다. 2번 홀 오른쪽에는 워터해저드가, 왼쪽에는 아웃오브바운스(OB)의 페널티 구역이 있었는데, 디아먼드는 이 홀에서 무려 6번의 티샷 OB를 내 티잉 그라운드에서만 12타를 친 것입니다. 디아먼드는 이날 19 오버파로 최하위 144위로 1라운드를 마쳤다고 합니다.
그런데 디아먼드가 경기 후에 언론과 인터뷰에서 멋진 멘트를 날려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는 "여러분이 오늘 나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기권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즐기라는 것"이라며 "이건 게임이다. 누구에게나 나쁜 날이 있다."라고 '설파'한 것입니다. 디아먼드의 멘트는 롱홀에서 12타를 친 저에겐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컨디션이 좋은 날엔 아니카 소렌스탐처럼 한 라운드 13언더파(-13)인 59타도 칠 수 있지만 벤 디아먼드처럼 한 홀 17타도 칠 수 있는 스포츠가 골프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7 오버를 기록한 이 홀에서 투온을 시켜 많은 버디를 잡았고 이글까지 잡은 적이 있었으니까요.
7 오버파를 기록한 것을 계기로 규정 타수보다 적게 쳤을 때와 많은 타수를 기록했을 때의 용어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규정 타수보다 1타 적으면 '버디(Birdie)', 2타 적으면 '이글(Eagle)', 3타 적으면 '앨버트로스(Albatross)', 4타 적으면 '콘도르(Condor)', 5타 적게 치면 '오스트리치(Ostrich)', 6타 적게 치면 '피닉스(Phoenix)'라고 합니다. 작은 새에서 시작해 점점 큰 새의 이름을 붙인 것이죠. 필자는 2타 적은 '이글'과 '홀인원(에이스)'을 한 경험은 있지만 3타보다 적게 쳐보지는 못했습니다. 앨버트로스를 잡으려면 롱홀(파 5)에서 2타 만에 볼이 홀컵에 들어가야 하니까 정말 쉽지 않은 일이죠.
반대로 규정 타수보다 많이 치는 '오버파'인 경우를 살펴볼까요? 한 타 많으면 보기(Bogey)이고 한 타씩 늘어날 때마다 '보기' 앞에 '더블(Double·+2)', '트리플(Triple·+3)', '쿼드러플(Quadruple·+4)', '퀸튜플(Quintuple·+5)', '섹튜플(Sextuple·+6)', '셉튜플(Septuple·+7)', '옥튜플(Octuple·+8)', '노뉴플(Nonuple·+9)', '데큐플(Decuple·+10)'을 붙입니다. 또 그 이상의 타수는 10 오버파를 뜻하는 데큐플보기 앞에 '우노(Uno)', '듀오(Duo)', '트레(Tre)', '쿼터(Quatter)', '퀸(Quin)' 등 라틴어가 붙습니다. 그래서 13 오버파를 친 벤 다이아몬드가 트레데큐플보기(Tredecuple Bogey)를 기록했다고 하는 겁니다.
이처럼 골프는 타수가 많은 것보다 적어야 즐거운 스포츠입니다. 특히 힘도 덜 들어가야 부드러우면서도 힘 있고 정확한 샷을 구사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그날 왜 그런 엉망인 샷이 나왔는지 그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전날 아파트 커뮤니티 헬스장에서 기구를 들고 땀을 뻘뻘 흘릴 정도로 평소보다 과하게 운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골프 치기 전날 빡세게 근력 운동을 한 덕분에 어깨를 포함해 온몸이 뻣뻣한 상태에 있었고, 이것이 샷을 컨트롤할 수 없게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골퍼들은 라운드 전날 연습장에서도 너무 많은 스윙을 하지 말 것을 권합니다. 온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게 되니까요.
다음 라운드 땐 꼭 충분히 휴식한 뒤 필드에 나가려고 합니다. 릴랙스 한 근육 상태로 라운드를 했을 때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그날 경기를 마치고 식당으로 향하면서 아내가 던진 날카로운 한마디가 아직도 귓전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골프를 친 지 그렇게 오래되고, 레슨 프로라면서 어떻게 그런 볼을 칠 수 있어요?" 그렇습니다. 구력이 아무리 오래되었더라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엉망의 결과'로 연결되는 게 골프인 것 같습니다. 골프는 머리로 하는 운동이기도 하지만 결국 샷의 결과는 몸동작이 어떠냐에 따라 결과가 좌지우지됩니다. 골프라는 스포츠의 '요체(要體)'는 느긋한 마음으로 힘을 확실히 뺄 수 있느냐 여부인 것 같습니다.
마우대의 인생골프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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