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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이야기

"아, 야속한 퍼팅!"... 매킬로이의 한숨 <168>

by 마우대 2024. 6. 24.

 

패자의 '머리 감싸기' ... 로리 매킬로이가 2024년 6월 17일메이저대회인 US오픈 4라운드 18홀에서 파 퍼트를 놓친뒤 머리를 감싸쥐며 안타까워 하는 모습. (USA 투데이 = 연합뉴스)

 

대회 때마다 호쾌한 장타를 과시하는 세계 랭킹 2위 로리 매킬로이(35·북아일랜드). 메이저대회인 2024년 US오픈에서 매킬로이는 퍼팅 때문에 머리를 싸잡아 매야 했습니다. 대회 때마다 압도적인 기량으로 강력한 우승 후보군에 포함되며 구름 관중을 몰고 다니고 있는 매킬로이였지만 올해 US오픈에서 1.2m짜리 퍼팅을 놓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필자도 이 대회 최종 라운드 TV 중계를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는데 18홀에서 그의 퍼팅이 홀컵을 살짝 벗어나는 순간 "아니, 매킬로이가 이런 실수를?"라며 외마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2024년 6월 17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파인허스트 골프 앤 리조트에서 열린 대회 최종 라운드에서 디섐보(31.미국)가 포함된 챔피언조의 앞조에서 경기를 펼친 매킬로이는 한 때 2 타자 선두까지 치고 올라가며 2014년 브리티시오픈과 PGA챔피언십 이후 10년 만에 메이저대회 우승을 눈앞에 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신(神)은 매킬로이의 우승을 작심한 듯 막아서고 있었습니다. 볼과 홀컵 간의 거리는 1.2m. 평소 매킬로이의 실력이라면 결코 놓칠 수 없는 퍼팅 거리였지만 퍼터 헤드에서 튕겨나간 볼은 내리막성 라이를 타고 살짝 홀컵 오른쪽으로 벗어나고 말았던 것입니다.

 

파 세이브만 했다면 4라운드 합계 6언더파로 동타를 기록 중이던 브라이슨 디섐보(31·미국)와 최소한 연장전으로 끌고 갈 수 있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우승의 향방은 달라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뒷조에서 경기를  펼친 디섐보의 볼은 티샷이 심한 훅이 걸리는 바람에 좌측 깊숙한 불모지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특히 나뭇잎에 클럽 헤드가 걸려 백스윙도 쉽지 않은 등 큰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매킬로이가 파 세이브만 했다면 한 타를 잃을 수도 있는 위기에 처한 디섐보에게 엄청난 압박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요. 이런 상황에서 매킬로이의 어이없는 퍼팅 실수 장면을 지켜봤으니 디섐보 입장에서는 당연히 여유를 가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승자의 '포효'... 2024년 US오픈 최종라운드 18번 홀에서 퍼팅에 성공, 파 세이브로 우승을 확정지은 뒤 포효하는 브라이슨 디섐보. (USA투데이스포츠 = 연합뉴스)

  

한 타를 까먹어도 5 언더로 동타가 되어 연장전까지 나가서 한 번 더 승부를 겨룰 수 있는 기회를 손에 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요. 나뭇잎이 걸리고 그린도 거의 보이지 않은 어려운 상황에서 디섐보의 세컨드샷은 그린 오른쪽 벙커에 빠지는 바람에 '예상된 위기'를 맞았습니다. 그러나 디섐보는 마지막 순간에 이를 악물고 집중력을 발휘하는 저력을 과시했습니다. 거의 15~20m 정도 떨어진 그린 사이드 벙커샷을 홀컵 1.2m까지 붙인 뒤  특유의 잔뜩 웅크린 자세로 퍼팅을 성공한 디섐보는 동반자가 퍼팅을 마무리하지 않았는데도 껑충껑충 뛰면서 포효하는 우승 세리머니를 펼쳐 보였습니다.

 

2020년 이 대회에서 우승했던 디섐보는 4년 만에 다시 정상에 올랐고 430만 달러(약 59억 7천만 원)라는 두둑한 우승상금도 챙겼습니다. LIV 소속 선수로는 2023년 PGA 챔피언십에서 브룩스 켑카(34ㆍ미국)에 이어 디섐보가 두 번째 PGA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가져가는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1.2m 퍼팅을 놓쳐 우승컵을 LIV 선수에게 내준 매킬로이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는 디섐보에게 축하 인사조차 건네지 않고 대회장을 빠져나가 버린 그의 행보에서 드러납니다. 의도적으로 디섐보를 피했다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엄청난 실망을 했고, 결국  '참을 수 없는 분노'로 연결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1.2m 퍼팅 실패로 매킬로이는 2011년 이후 13년 만에 US오픈 우승 기회를 놓친 셈이 됩니다. 디섐보의 티샷이 훅 나고 세컨드 샷마저 벙커에 빠지는 등 위기에 처하자 매킬로이는 TV를 보면서 연장전을 준비하는 모습이 잠시 비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디섐보가 끝내 파세이브로 6 언더를 지키며 우승을 확정 짓자 매킬로이의 낙담하는 모습이 TV 중계를 통해 전 세계 골프팬들에게 전달되기도 했습니다. 매킬로이의 이번 패배는 1996년 마스터스에서 닉 팔도(66ㆍ잉글랜드)에게 역전패한 그레그 노먼(69ㆍ호주)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습니다.

 

 당시 노먼은 6타 앞선 선두였으나 마지막 날 무너져 팔도에게 ‘그린재킷’을 내준 것은 이날 2타 차까지 앞서가던 매킬로이가 냉탕온탕을 오가며 불안을 경기를 펼친 디섐보에게 역전패당한 것과 오버랩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 매체 골프위크는 "향후 매킬로이가 노먼처럼 더 많은 우승을 했어야 하는 선수로 기억되거나, 필 미켈슨(54·미국)처럼 예상을 뒤엎는 유산을 남기는 선수가 되거나 갈림길에 서 있다."라고 평가했습니다. 미켈슨은 2004년 마스터스에서 첫 메이저 타이틀을 들어 올렸고 2021년에는 PGA 챔피언십에서 우승, PGA 사상 최초로 '50대 챔피언' 자리에 오른 바 있습니다.

 

매킬로이의 이번 패배는 '충격'을 떨쳐내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우선 6월 다섯 번째 주에 열리는  PGA투어 마지막 특급대회인 트래블러스 챔피언십(총상금 2,000만 달러)의 출전자 명단에서 매킬로이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매킬로이는 자신의 SNS에 "어제(6월 17일)는 프로골퍼로서 거의 17년 동안 겪었던 가장 힘들 날이었을 것"이라면서 " 17년간 내가 보였던 회복력을 다시 한번 보여주겠다. 부정적인 면이 아닌 긍정적인 면을 살피겠다. 스코틀랜드에서 만나자."라고 적었습니다.

 

슈퍼급 대회 등을 건너뛰는 등 2주간 푹 쉬고 2024년 7월 12일에서 열리는 제네시스 스코틀랜드 오픈에 출전할 뜻을 밝힌 것입니다. 이 대회는 매킬로이가 지난해 우승자 자격으로 출전하게 됩니다. 《드라이버는 쇼(show)이고 퍼트는 돈》이라는 골프 명언이 있습니다. 아무리 드라이버나 아이언으로 장타를 펑펑 날려도 그린 위에서 퍼팅으로 결정적인 상황에서 버디를 잡거나 파 세이브를 하지 못하면 좋은 경기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2024년 US오픈에서 보여준 매킬로이와 디섐보의 경기를 통해 골프에 있어서 '퍼팅 마무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또한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골프에 있어서 퍼트는 '돈이자 우승'이라는 사실을. 

 

마우대의 인생골프 이야기는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