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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이야기

'인생'과 너무 닮은 '퍼팅 실패-극복' <172>

by 마우대 2024. 7.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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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미국 캘리포니아 란초 미라지 미션힐스 골프장에서 열린 메이저대회인 LPGA 크라프트 챔피언십 최종라운드 18번홀에서 30㎝짜리 파 퍼트를 놓치고 그린에 주저 앉은 김인경. 김인경은 이 퍼트를 놓치는 바람에 연장전까지 끌려가 한국의 유선영에게 우승컵을 헌납하고 극심한 슬럼프에 빠졌다. (AP/연합뉴스)

 

'드라이버는 쇼, 피팅은 돈'. 골퍼라면 귀가  닳도록 들었던 말입니다. 아무리 드라이버를 잘 쳤다라도 그린 위에서 퍼팅을 놓치면 스코어를 망칩니다. 특히 프로 선수들에겐 퍼트를 실패하면 손에 잡힐듯 했던 우승컵과 함께 큰 상금을 경쟁자에게 헌납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골퍼들은 그린 위에만 서면 짧은 거리의 퍼팅일지라도 볼을 홀컵에 넣기위해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짧은 퍼팅을 놓쳤다가 좌절의 깊은 늪에 빠진 대표적인 선수가 김인경(36·한화큐셀 )입니다. 그녀는 2012년 4월 2일 미국 캘리포니아 란초 미라지 미션힐스 골프장에서 열린 메이저대회인 크라프트 나비스코 챔피언십 최종라운드 18번홀에서 30㎝짜리 파 퍼트를 남겨놓고 있었습니다. 이 정도 거리라면 초보 아마추어 골퍼도 '넣어질 수밖에 없는' 퍼팅 성공확률 100%의 상황이었죠.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김인경이 퍼팅을 하자마자 TV 생중계를 통해 경기 장면을 지켜보던 전 세계 골프팬들의 입에서는 "으잉?", "어, 어?", "아니 이런 일이?", "어떻게 이럴 수가?"라는 깊은 탄식이 쏟아졌습니다. 김인경이 퍼팅한 볼이 홀 주위를 돌다가 밖으로 굴러 나와 버렸기 때문입니다. 스스로도 너무 놀라고 믿기지 않았던지 김인경은 그린에 주저 앉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동그랗게 눈을 뜬채 한동안 손으로 입을 막고  서 있어야 했습니다.  당시 김인경은 대만의 쩡야니에게 3타 뒤진 공동 4위로 출발했지만 17번홀까지 4타를 줄여 10언더파로 단독 선수에 올라섰고 18번홀 30㎝짜리 퍼팅만을 남겨 놓고 있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눈 감고도 넣을 수 있는 거리의 퍼팅을 놓치고 말았으니.... '메이저 퀸', 호수의 여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날아간 순간이었습니다.

 

이 퍼팅을 놓친 김인경은 결국 연장전으로 끌려가 보기를 한 끝에 유선영에게 우승컵을 헌납하고 말았습니다. 우승상금은 30만달러(당시 한화 3억3,800만원)이었지만 준우승 상금18만2,538달러(약 2억5천만원)에 만족해야 했습니다. 30㎝ 퍼팅 실패가 메이저 대회 우승컵과 함께 상금 1억3천만원을 날려야 했던 것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많은 선수가 그랬듯이 김인경 역시 엄청난 트로우마에 사로잡혀 혹독한  슬럼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골프가 장갑을 벗을 때까진 결과를 모른다고 하지만 '30㎝ 퍼팅 실패'가 왜 자신에게 들이닥쳤느냐며 부끄럽고 억울한 나머지 수많은 불면의 밤을 보냈을 겁니다. 김인경은 "누구나 실수는 하지만, 그것은 나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라며 심한 자책감에 시달렸음을 털어놓았습니다.

 

활짝 웃고 있는 김인경. (연합뉴스)

 

깊은 슬럼프에 빠진 김인경은 인도네시아에서 단식 수련을, 인도에서 요가 수련을 했고 명상과 피아노·기타 연주, 역사 유적지 탐방, 여행 등으로 트라우마 극복에 매달려야 했습니다.  그리고 5년만인 2017년 메이저대회인 브리티시 여자 오픈에서 우승, 재기했음을 과시했습니다. 그러나 30㎝ 퍼팅 실패의 충격이 5년여동안 그를 괴롭힌 셈이 되었죠. 브리티시 여자 오픈 우승 이후 언론과 인터뷰에서 김인경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매우 힘든 시간이었지만 나는 코스 안팎에서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기 시작했다. 나 자신에게 친절해지고, 따뜻해지려고 했는데 그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라고 귀띔했습니다. 지옥과도 같았던 트라우마와 슬럼프를 이겨낸 힘은 결국 스스로를 칭찬한 것이었죠. 김인경의 트라우마 극복 과정을 통해 골프가 우리의 '인생'과 너무 닮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타이거 우즈는 디오픈 개막을 앞둔 2024년 7월 17일(한국시간) 스코틀랜드 로열 트룬 골프클럽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US오픈 패배로 상심한 로리 매킬로이(북아일랜드)에게 자신의 2009년 PGA 챔피언십 실패를 거론하며 위로의 말을 건네 눈길을 끌었습니다. 매킬로이는 지난달 미국 파인허스트 골프 앤드 리조트에서 열린 US오픈 최종일 대회에서 18번홀에서 1.2m짜리 짧은 파퍼트를 놓쳐 브라이언 디섐보(미국)에게 우승컵을 헌납, 세계 골프팬들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충격에 빠진 매킬로이는 모든 사람과의 연락을 피하기 위해 전화번호를 바꿨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우즈가 보낸 격려 메시지조차 최근에 알게되었다는 것입니다. 우즈는 이와 관련, "2009년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한국의 양용은에게 역전패를 당하고 회복할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라고 술회하며 매킬로이를 토닥였습니다.

 

매킬로이도 같은 장소에서 기자들에게 우즈의 격려에 대해 이렇게 화답했습니다. "US오픈이 끝난지 이틀만 후에 전화번호를 바꿨다. 오늘 우즈가 말해주기 전까진 격려 메시지를 받은 사실을 알지 못했다. 내 인생에서 우즈는 놀라운 존재다. 기쁠 때나 나쁠 때나 항상 좋은 메시지를 보내줬다."라고 밝힌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김인경과 타이거 우즈도 그랬던 것처럼 매킬로이도 지금부터 더욱 자신을 토닥여 줘야 합니다. 다시 일어서려면 코치의 힘도, 가족의 힘도 아닌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김인경이 자신을 토닥인 멘트가 큰 울림을 줍니다. "나 자신에게 친절해지고, 따뜻해지려고 했는데 그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라는 그 말. 인간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김인경, 우즈, 매킬로이와 같은 큰 실패나 실수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제대로 극복하려면 자신에게 더 친절해지고 더 따뜻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혹독한 시련의 과정을 딛고 일어섰기에 요즘 그 김인경이 LPGA 무대에서 다시 강력한 부활의 날갯짓을 하는 것 같습니다.

 

마우대의 인생골프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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