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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 프로선수가 벙커에서 모래를 살짝 건드렸다며 자진 신고한 '벌타 값'이 무려 33억 원짜리였습니다. 골프는 룰이 생명입니다. 그래서 룰을 엄격하게 적용하기로 유명한 스포츠입니다. 그 룰은 경기위원이나 동반 플레이어 등 '감시자'에 의해서만 작동하지 않고 오히려 플레이어 스스로가 양심껏 철저하게 적용한다는 점에서 다른 스포츠와 차별성을 갖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골프 경기가 정직성을 중요한 덕목으로 삼는 스포츠래도 자진 신고한 벌타값이 무려 250만 달러(한화 33억 원 상당)나 되었다면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화제의 주인공은 사히스 티갈라(Sahith Reddy Theegala·26·미국)입니다. 그는 2024년 9월 12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내파의 실버라도 리조트 노스코스(파 72·7123야드)에서 개막하는 PGA 투어 프로코어 챔피언십(총상금 600만 달러)을 앞두고 2023년 챔피언 자격으로 나선 기자회견에서 "룰 위반 사실을 신고하지 않았다면 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라며 떳떳하게 자진 신고했던 소감을 피력했습니다. 동반자가 눈치채지 못한 것은 물론 자신도 긴가민가할 정도로 미세했지만 자신 신고를 하고 나니 맘 편하게 잠을 청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티갈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티갈라는 2024년 8월 투어 챔피언십 3라운드 3번홀에서 벙커샷을 하다가 클럽이 모래 알갱이를 건드린 것 같다며 동반자 잰더 쇼플리(미국)에게 알리고 경기위원을 불러 자진 신고를 해 2 벌타를 부과받았습니다. 만약 2 벌타를 받지 않았다면 3위가 아닌 공동 2위로 경기를 끝낼 수 있었고, 보너스 상금도 750만 달러가 아닌 1,000만 달러를 챙길 수 있었습니다. 자진 신고 벌타 값이 무려 250만 달러, 한국 돈으로 33억 원에 달했던 것입니다.
티갈라의 벙커샷 위반 장면은 방송 화면에서조차 판독하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티갈라는 "룰을 확실하게 위반했고, 대가를 치르니 기분이 좋다."라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티갈라의 이런 정직성은 '교육의 힘'에서 비롯된 것으로 밝혀져 눈길을 끌었습니다. 주니어시절부터 티갈라를 가르친 캘리포니아주의 유명한 교습가인 릭 헌터는 "골프 코스에서 룰 위반을 속인다면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라며 룰 준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헌터는 "속임수를 쓰면 밤에 잠을 못 이룰 것이라는 내 표현을 그대로 사용한 게 맞다. 그러나 가르침을 그대로 실천하고 일을 처리하는 방식이 티갈라의 됨됨이를 보여준 것"이라며 제자를 칭찬했다고 합니다. 티갈라의 정직성이 빛을 발한 데는 부모 교육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아버지는 나에게 골프에 관한 모든 가치를 가르쳐 주셨고, 어머니는 골프 외적인 부분에 대해 가르쳐 주셨다. 어쨌든 내가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분명히 밝히고 싶었을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그 스승에 그 제자였고, 그 부모에 그 자식이었던 것이죠. 용장(勇將) 밑에 약졸(弱卒) 없다는 말이 있듯이 엄격한 골프 교습가와 부모의 가르침이 티갈라의 용기 있는 '자진 신고 정신'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골퍼라면 룰을 제대로 지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압니다. 특히 아마추어 골퍼들은 동반 플레이어가 안보는 상황에서 예사로 룰 위반 행위를 저지릅니다. 특히 디보트에 볼이 빠지거나 벙커 안에 볼이 들어가면 예사로 볼을 좋은 곳으로 옮겨서 샷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있는 그대로 볼을 쳐라(play the ball as it lies)'는 가장 기본적인 불변의 골프 룰입니다. 골프 경기의 특성상 워낙 넓은 경기구역과 다양한 상황에서 샷을 해야 하기 때문에 온갖 유혹에 흔들리기 십상입니다. 예컨대 드라이버로 친 볼이 페어웨이에 잘 떨어졌더라도 잔디 상태가 좋은 쪽으로 살짝 옮겨서 치고 싶은 유혹에 흔들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아마추어는 주저 없이 볼을 손으로 집거나 클럽 헤드로 볼을 툭툭 쳐서 옆자리에 옮긴 뒤 샷을 하다 동반자와 시비가 벌어지기도 합니다.
1744년 스코틀랜드에서 만들어진 골프 룰의 역사는 올해로 280년이나 됩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단 한번도 변하지 않고 지켜지는 골프 룰이 13조 '있는 그대로 볼을 쳐라'입니다. 실수이든, 의도적으로 볼을 움직였든 이 룰을 위반하면 페널티를 받아야 합니다. 만약 페널티 구역이 아닌데도 다음 샷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지면 동반자나 경기위원에게 당당하게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하고 1 벌타와 함께 구제받은 뒤 플레이를 속개하면 됩니다. 있는 그대로 볼을 치는 행위는 자신에게도 떳떳하지만 280년이나 된 골프 룰을 철저히 지키는 골퍼라는 자긍심도 가질 수 있습니다.
필자의 지인은 습관적으로 볼을 옮기며 샷을 합니다. 또 워터 해저드에 볼이 빠지거나 OB구역으로 볼이 들어갔는데도 볼이 살아있다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자주 봤습니다. 그러면 안 된다고 지적을 했더니 기분 나쁘다며 되레 역정을 냅니다. 골퍼라면 누구나 라운드 도중에 그런 유혹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골퍼 자신을 절대로 속이지 않겠다는, 처절할 정도로 정직하게 샷을 하겠다는 '굳센 각오'를 늘 장착한채 플레이를 해야 합니다.
볼을 맘대로 이리저리 옮겨 최대한 좋은 조건을 만들어 70대 스코어를 내는 것보다 있는 그대로 쳐서 90대 스코어를 내는 것이 올바른 길이고, 그래야 떳떳하게 스코어카드를 쥘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골프의 수많은 룰이 있지만 '있는 그대로 볼을 칠 수 있으면' 골프 룰 50%를 충실히 이행하는 셈입니다. 고의적이진 않더래도 볼을 건드렸을 경우 동반자나 경기위원에게 자진 신고까지 할 수 있으면 그 골퍼는 90%의 골프 룰을 준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 측면에서 자진 신고 후 벌타를 받고 250만 달러(33억 원)를 날린 티갈라는 '골프계의 새로운 전설'로 우뚝 서 있을 겁니다. 티갈라처럼 골프 룰을 철저히 지켜 전설이 된 인물이 또 있습니다. 바로 매년 마스터스 대회가 열리고 있는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의 설립자 바비 존스(Bobby Jones, 본명 Robert Tire Jones Jr, 1902.3~1971.12)입니다. 바비 존스는 99년 전인 1925년 미국 매사추세츠 위스티에서 열린 US오픈 11번 홀에서 아이언샷이 잘못되어 그린 옆 풀숲에 떨어졌습니다. 다음 샷을 하기 위해 어드레스를 하는 순간 자신이 판단했을 때 볼이 살짝 움직인 것 같았습니다.
심판도 못 봤고, 갤러리도 못 봤지만 그는 경기위원에게 "공이 움직였다."라고 신고했고 2 벌타를 받았습니다. 이 벌타 때문에 마지막 라운드에서 맥파렌과 동타를 이뤘고 플레이오프에 진출했지만 준우승을 하고 말았습니다. 대회가 끝난 뒤 그의 신사적인 행동에 대해 칭송을 하자 존스는 "은행원이 은행돈을 훔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칭찬을 받을 수 있나?"라고 답했습니다. 아마추어로서 수많은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이 '양심적인 행위'가 바비 존스를 '골프 룰의 수호자' 반열에 끌어올린 것입니다.
이 절절한 사연은 2023년 12월 28일 발행한 필자(마우대)의 인생골프 블로그 ≪'골프 룰 수호자' 바비 존스의 정신 <124> ≫편에서 다뤘습니다. 바비 존스의 철저한 골프 룰 준수 정신은 99년이 지난 사히스 티갈라에게 발현되어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었습니다. 티갈라가 큰 박수를 받은 이유는 골프 룰을 지키기 위해 양심을 속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바비 존스가 활약할 때 대회 상금 규모는 매우 적었습니다. 상금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커진 2024년 현재 티갈라의 골프 룰 준수의 대가는 상금 250만 달러를 덜 받는 것이었습니다.
티갈라는 상금이 1,000만 달러에서 750만 달러로 쪼그라들어도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였으며 "실수를 저지른 게 틀림없다고 느꼈고, 명확하게 밝히고 싶었다."라며 당당하게 외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골프 룰 준수의 가치는 상금 1억 달러를 준다고 해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절대적인 것'으로 살아 숨쉬는 것입니다. 골프의 3가지 요소는 골프장, 골프 룰, 골퍼입니다. 골프 룰이 없으면 골프는 너무 싱거운 스포츠가 되고 맙니다. 따라서 필드에서 볼을 옮기고 싶은 유혹에 직면했을 때 티갈라와 바비 존스의 골프 룰 준수 정신을 상기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스스로에게 떳떳해지고 당당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그날 밤 깊은 잠에 빠질 수 있을 것이고요.
마우대의 인생골프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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