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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는가? 끝까지 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 인생이다."
한 인간에게 있어서 성공의 길로 달리느냐, 꿈을 잃고 좌절한 채 그냥 그 자리서 주저앉아 실패의 길로 가느냐를 결정짓는 계기가 있습니다. 그 계기는 외부의 자극에 의해 떠밀린 것일 수도 있고, 스스로 무엇인가를 깨우치고 분연히 일어선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필자는 한국 골프계의 개척자 최경주의 경우 전자보다 후자에 해당된다고 봅니다. 전남 완도 촌놈 출신인 그는 우연히 접한 '골프라는 기회'를 딱 붙잡아버렸습니다. 그리고 골프에 자신의 인생을 걸기로 다짐했고, 숱한 실패를 견디며 끝까지 골프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골프가 그의 인생을 성공으로 이끌어 주었다고 봅니다.
최경주는 2012년 10월경에 자신의 도전과 실패, 성공으로 점철된 인생 역정을 정리한 저서 <실패가 나를 키운다 코리안 탱크 최경주>(비전과리더십刊)를 세상에 내놓아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촌놈 출신인 그의 인생 역정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습니다. 전남 완도군 완도읍 화흥리에서 태어난 그는 학교를 파하고 집에 돌아오면 농사와 고기잡이를 하는 아버지를 돕는 그저 그런 어촌아이였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아버지를 돕자고 등록금 면제를 받기 위해 동네 형의 권유로 완도중학교 역도부에 들어갔고, 점점 역도에 빠져들면서 열여섯 나이에 운동에 인생을 걸기로 작정합니다.
선장이 되라는 아버지의 권유에 못 이겨 완도수산고에 들어간 최경주. 입학 첫날 체육선생님의 줄 세우기를 통해 갑자기 골프부에 들어가게 된 최경주는 '꿩 사육장' 같은 골프연습장에서 처음으로 '짜릿한 손맛'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얀 볼이 포물선을 그리며 파란 하늘을 날아가는 장면이 사진처럼 최경주의 뇌리에 박혀버렸습니다. 홀리기라도 한 듯 골프에 빠져든 최경주는 쇠파이프로 하루에 수백, 수천번 폐타이어를 때리며 스윙연습을 했고, 틈만 나면 완도 옆 신지도에 있는 명사십리해수욕장을 찾아 바닷바람을 뚫고 벙커샷 연습도 했습니다. 이때 쌓은 벙커샷 실력은 투어프로가 된 뒤 대회 실전에서 큰 무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엄청난 연습량 덕분에 실력은 일취월장, 고1의 최경주가 골프를 시작한 지 5개월 만에 76타를 기록하자 "광주시내에 골프 괴물이 나타났다."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 정도였다고 합니다. 광주 cc 카트에 광주출신 국가대표와 상비군의 이름표가 붙어 있는 것을 보고 최경주는 반드시 최고의 프로 골퍼가 되어서 자신의 이름 석자를 붙인 카트를 갖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합니다. 그리고 화흥리 골프연습장에서 우연히 만난 서울 한서고등학교 이사장의 권유를 받은 뒤 "비싼 값에 팔리겠다."라며 전학을 가기 위해 서울행 기차에 올랐습니다.
고향 완도에서 단기사병으로 군 복무를 마친 최경주는 프로 테스트에 도전, 한 번에 합격했고 연습장에서 알게 된 목사님의 소개로 법대 4학년에 재학 중인 지금의 아내 김현정 씨를 만나 사랑을 싹 틔워갔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김현정 씨는 최 프로가 미국에 진출한 뒤 어려움에 직면할 때마다 기도로써 큰 힘을 주었다고 합니다. 아내 덕분에 최 프로도 하나님을 '최대의 백'으로 삼는 제대로 된 크리스천이 되었고요. 프로가 된 뒤 연습장 취업을 하려고 하니 헤드 프로 등의 텃세에 막혀 큰 곤욕을 치르기도 했대요. 온갖 설움 속에서도 최경주는 더 독한 마음을 먹었습니다. "끝까지 가야 한다. 멈추지 말고 끝까지 도전해야 한다."라고.
텃세 심한 서울을 벗어나 인천의 모 연습장으로 자리를 옮기니 "진짜 골퍼가 왔다"는 소문이 금세 나면서 많은 회원들이 최경주 프로에게 응원의 손길을 내밀었답니다. 여러 투어 대회에서 9홀, 36홀, 54홀, 72홀 최소타 기록을 갈아치우며 잇따라 우승하자 한국 골프계를 뒤흔들 '무서운 신인'이라며 최경주에 대한 대접도 확 달라졌다고 합니다. 최경주는 1997년 11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지역의 한 골프장에서 열린 국가대항전인 월드컵골프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처음 미국 땅을 밟았습니다. 황홀한 경치와 드라이빙 레인지의 잔디 연습장을 경험하곤 더 큰 무대인 PGA에 서겠다는 각오로 미국행을 결심합니다.
그렇게 미국에 진출한 최경주는 잡초 같은 근성으로 최고 실력자들만 살아남는 PGA 무대에서 수시로 우승컵까지 들어 올리는 등 승승장구했습니다. 또 태극기가 새겨진 골프백을 메고 전 세계를 누비며 지금까지 '코리안 탱크'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특히 자신의 54세 생일인 2024년 5월 19일 제주 서귀포시 핀크스골프클럽에서 열린 SK텔레콤 오픈에서 당당히 우승, 2005년 KT&G 매경오픈에서 50세 4개월 25일의 나이로 우승한 최상호 기록을 갈아치워 버렸습니다. 더욱더 놀라운 것은 2024년 7월 29일(한국시간) 영국 스코틀랜드 커누시티의 커누스티 골프 링크스(파 72)에서 열린 더 시니어오픈에서 챔피언자리에 올라, 한국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미국과 유럽 양쪽 시니어투어 메이저대회를 제패하는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이처럼 녹슬지 않는 최경주 실력의 뿌리는 잡초 같은 근성입니다. 그의 저서 <코리안 탱크 최경주>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잡초의 뿌리는 본 적이 있는가. 어느 날 뿌리째 뽑아 버리겠다고 벼르며 땅을 파 내려가봤다. 그런데 제풀에 지쳐서 포기하고 말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잡초의 뿌리가 훨씬 깊고 넓게 뻗어 있었기 때문이다. 죽일 놈의 잡초라고 욕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참 기특했다. '이것처럼만 살면 어떤 어려움도 다 이기며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골프를 더 잘하려고 싶은 마음에 혼자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해서 동네가 발칵 뒤집혔을 때부터 나는 잡초처럼 살기로 결심했다. "
"내가 왜 미국에 갔나를 생각해 보니 영어를 잘하려고 간 게 아니라 골프를 잘하기 위해서 간 건데, 영어 때문에 고민할 시간에 골프 연습을 더 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질문에 나름대로 대답하면 기자들이 멀뚱멀뚱 쳐다보곤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당당히 내 할 말만 하고 자리를 떴다. 내 연습 시간을 빼앗겨 가면서까지 설명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자리를 뜨면 아쉬운 쪽은 그들이었다. 내 말을 듣기 위해서 통역하는 사람을 데리고 오기도 했다. 이렇듯 잡초는 어떤 상황에서도 죽지 않는 끈질긴 생명력, 스스로 살길을 찾아 나서는 자생력, 배짱으로 버티는 근성이며 강한 정신력이다."
촌놈 최경주는 골프에 인생을 걸기로 결심하고 죽을힘을 다해 달려들었고, 매달렸습니다. 그 결과 미국 PGA 무대에서도 살아남았는데, 비결은 다름 아닌 잡초 같은 근성으로 한 우물만 팠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최경주를 통해 단순해 보이지만 확실한 '인생 성공 비법'을 전수받았습니다. "성공하려면 죽을힘을 다해 한 우물을 파 보라!"가 그것입니다.
마우대의 인생골프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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