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둥이 양희영, 2023년 시즌 최종전에서 우승 쾌거
양희영(Amy Yang·34)은 든든한 체구, 특히 통통한 하체와 둥글둥글 얼굴에 큰 눈으로 순둥이 같은 마스크여서 보는 이들을 편안하게 합니다. 성적 순이 아니더라도 외모적으로도 금방 눈에 띕니다. 무엇보다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자로 잰듯한 샷을 딱딱 날리는 선수이면 "아, 양희영이 플레이를 펼치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 많은 LPGA 선수 중에서 체구와 샷 동작만으로 '양희영임'을 어필하고 있는 것입니다. 필자는 그래서 평소 양희영의 샷 동작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 넘은 경지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양희영이 2023년 시즌 최종전에서 완벽에 가까운 플레이로 우승, 200만달러 즉 한국 돈 25억 9천만 원을 거머쥐는 잭팟을 터뜨렸습니다. 양희영은 11월 20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의 티뷰론 골프클럽 골드코스(파 72)에서 열린 LPGA 투어 시즌 최종전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총상금 700만 달러)에서 4라운드 최종합계 27언더파로 공동 2위 앨리슨 리(미국)와 하타오카 나사(일본)를 3타 차로 누르고 정상의 자리에 섰습니다. 상금은 메이저인 US여자오픈과 함께 역대 LPGA 대회 최고 금액입니다.
美 본토에서 첫 우승... 개인 통산 5승째
이로써 양희영은 LPGA 개인 통산 5승째이자 미국 본토에서 첫 우승을 기록하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LPGA 시즌 최종전에서 우승한 한국 선수로는 박희영(2011년), 최나연(2012년), 김세영(2019년), 고진영(2020,2021)에 이어 6번째입니다. 또 한국 선수의 2023년 시즌 우승 수를 4개에서 5개로 늘렸고요. 양희영에겐 무엇보다 2019년 2월 혼다 타일랜드에서 우승한 이후 1,729일(57개월, 4년 9개월)만에 다시 우승컵을 들어 올린 쾌거였습니다. 34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도 그의 골프 실력은 여전히 빛나고 짱짱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번 대회 우승을 계기로 자신감을 끌어올린만큼 LPGA 무대 평정을 위한 그의 행보는 계속될 것입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라는 우리 속담이 있듯이 양희영은 운동선수 출신의 부모의 DNA를 타고난 그야말로 '될성부른 꿈나무'였습니다. 아버지 양준모 씨는 국가대표 카누 선수, 어머니 장선희 씨는 창던지기 아시안게임 동메달리스트 출신입니다. 호주에서 골프 유학을 한 양희영은 2006년 아마추어 자격으로 참가한 LET(여자 유러피언 투어) ANZ레이더스 매스터스에서 덜컥 우승해 버린 것이죠.
"번번이 우승 문턱에서 좌절... 긴장 많이 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16세 192일에 불과했기 때문에 당연히 최연소 우승자였습니다. LET는 너무 어린 양희영에게 18세까지 부모와 함께 여행한다는 조건으로 3년의 회원 자격 면제를 부여했고, 고교(로비나고교)를 다니던 2007년에도 네 번이나 20위에 진입하는 놀라운 기량을 보여주었습니다. 2007년 가을에 LPGA 투어 자격 토너먼트에 참가한 결과 2008년 시즌 참가를 위한 조건부 자격을 얻는데도 성공했습니다. LPGA에서는 '에이미 양(Amy Yang)'이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13년 한국에서 열린 LPGA KEB-하나은행 챔피언십에서 첫 우승을 신고한 뒤 2016년에는 박인비와 함께 리우올림픽에도 출전했습니다. 양희영은 그동안 숱한 대회에서 상위권에서 맴돌았어도 우승과는 거리가 멀어 팬들의 애간장을 태웠죠. 그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한 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이런 조바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최근에 성적도 좋았고 마지막 그룹(챔피언 조)에서 플레이 했지만 번번이 우승하지 못해서 솔직히 많이 긴장되고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의심이 들었는데 오늘 이렇게 우승을 하게 돼서 너무 기쁘다."
"골프는 멘털 경기... 스스로 어르고 달래면서 경기 임해"
우승 문턱에서 계속 주저앉을 때 얼마나 좌절했는지를 인터뷰에서 잘 표현해 준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골프 경기가 결국 정신력(멘털)의 싸움임을 강조했습니다. "최종 라운드 초반에 보기를 한 뒤 또 무너지는가라는 마음의 소리가 있었지만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괜찮다고 다독이면서 계속해서 기회를 만들어서 차근차근 해나가자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골프는 기술도 기술이지만 멘털의 중요성을 꼭 꼽고 싶다. 프레셔(압박)가 많은 상황이어서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고 하지 않았더라면 그 순간 또 무너졌을 거다."
양희영은 특히 13번 홀에서 환상적인 이글 샷을 터뜨리고 난 뒤에도 더 차분한 플레이를 펼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2위와의 스코어 차이가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었대요. 그러다 17번 홀에 와서 2타 차로 앞선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겨우 우승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마지막 18홀에서 세컨드 샷을 잘 붙여놓고도 너무 떨렸다는 양희영은 "평소 하던 대로 하자."라는 캐디의 한마디가 큰 위안이 되어 결국 버디를 잡을 수 있었고, 3타 차 우승으로 마지막 대회 피날레를 장식할 수 있었습니다.
취미로 암벽등반 빠졌다가 엘보 심해져 골프 포기 생각도
양희영은 암벽등반이라는 취미에 빠져 골프 포기를 생각할 정도로 큰 위기도 겪었다고 합니다. 암벽 등반을 하면서 팔 근육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바람에 테니스 엘보가 덮친 것입니다. 엘보의 고통이 너무 커서 클럽을 잡기조차 힘들었고, 몸 상태가 이러니 경기 성적은 부진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그래서 그는 한 때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빠진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양희영이 이젠 부상을 말끔히 씻고 그렇게 고대하던 우승까지 달성, LPGA 무대를 누빌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다행입니다.
이번 대회에서도 메인 스폰서가 없어 민모자를 쓰고 경기를 펼친 것을 본 양희영 팬 K 씨는 필자에게 알 수 없는 분노감이 치밀어 올랐다고 밝혔습니다. "양희영의 이번 대회 경기 장면을 보면서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저렇게 완벽한 샷을 날리면서 우승까지 한 선수에게 메인 스폰서가 없다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모 선수는 성적이 좋지 않은데도 몸매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스폰서가 줄을 섰지 않은가. 선수 자질이 아닌 외모 지상주의, 몸매 지상주의에 빠진 기업들의 얄팍한 후원 정신이 너무 아쉽다."
양희영의 샷 동작은 무념무상 춤꾼 춤사위 연상
필자 역시 K 씨의 지적에 깊이 공감합니다. 골프 실력은 결코 단시간에 완성될 수 없습니다. 부모로부터 훌륭한 '운동 DNA'를 받아 호주 조기유학길에 올랐고 프로 세계에서만 17여 년 동안 기량을 겨루어왔기에 '지금의 퍼펙트한 양희영 샷'이라는 결과물이 우리를 탄복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의 샷 과정은 구도자(求道者)가 신(神)을 만나기 위해 처절한 기도를 하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입니다. 샷 동작이 아니라 마치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너울너울 춤사위를 펼치는 춤꾼, 나비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필자는 양희영이 보여주는 샷은 인간경계(人間境界)를 훨씬 뛰어넘은 신(神)의 경지(境地)로까지 끌어올렸다고 감히 평가하고 싶습니다. 그 어떤 선수도 양희영 같이 우아하고 부드러우며 철저히 계산된 샷을 보여주는 데는 미치지 못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양희영의 샷은 '살아있는 골프 스윙의 교과서'라고 평가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 양희영을 후원하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다니요. 한국 골프계의 히어로인(heroine)인 양희영이 내년에는 어디까지 훨훨 날아오를지 벌써 궁금해집니다.
마우대의 인생골프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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